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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E》이모 할머니 잡화점의 바비 인형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실 밖으로 무지개색 칠이 된 나선형 계단이 하나 있었다. 2층 자연교실로 이어지던 그 계단은 수업 후 반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장난을 치던 큰 ‘무대’였다. 게다가 구석에서는 아이들이 세일러문 흉내를 내곤 했는데, 맞다. 이게 바로 오늘 내가 말하려는 이야기다. 

 당시 미소녀 전사는 반 친구들이 쉬는 시간이면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인기 소재였는데, 애들이 열광하는 정도가 파워 레인저에 버금갔다. 그 변신과정이 제일 화려했고 지금 보기에는 너무나 복고적인, 이마 가운데를 하트모양으로 비운 앞머리에, 정수리 양쪽 만두머리 두 개에서 뻗어나온 긴 블론드 헤어, 찰랑찰랑 머리칼을 휘날릴 수 있는 세일러문이야말로 당연히 반 여자 아이들과 내가 너도나도 앞다투어 맡고자 하는 캐릭터였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우리는 극중 악의 무리를 맡아 연기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고, 각 배역을 누가 맡을지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저마다 마음 속에 좋아하는 미소녀 전사 순위가 있었다. 누구는 전사의 성격을, 누구는 복장의 컬러를 중시했고, 각 전사와 자신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따지는 애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즐겼던 이런 만화영화나 카툰에 얽힌 추억이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심미관을 키워준 게 아닌가 싶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까지. 

 운이 좋았던 것은, 울 엄마는 한번도 내가 뭘 좋아하든 말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것도 엄마는 유치원 때부터 나를 화실에 보내 소묘, 수채를 배우도록 해주었고, 나를 데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회에 나가도록 해주었다. 

 나는 자주 거실 구석에 있는 탁자에 앉아 도화지에 색연필과 크레용으로 세일러문을 그리곤 했는데, 다 그린 그림은 옆에서 바삐 손님 머리를 감겨주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보여주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동네 이웃이자 손님들의 감상과 칭찬이 이어졌다. 비록 아빠는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내가 그림을 그만두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나를 빠져들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그린 도화지 그림은 모두 작은 압정 두 개에 꽂혀 벽에 전시되었고, 그러면 매일 학교 게시판에라도 올라간 듯 신이 났다. 거기가 바로 나의 작은 왕국이었다. 

 나에게 바비 인형 역시 그랬다. 
 외할머니에게는 여동생 셋이 있었다. 나는  그분들을 이모 할머니라 불렀다. 제일 자주 가던 건 막내 이모 할머니네였고, 역시 그분이 나를 제일 많이 돌봐주셨다. 외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제사용품점을 운영하셨던 첫째 이모 할머니는 내 마음 속 2위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녀가 쿨하다고 생각했다. 잡화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나는 종종 민남어 사투리로 그 가게를 ‘이모 할머니네 감자점(柑仔店 )’이라 불렀다. 가게 앞에는 작은 유리부스를 세워 ‘빈랑’ 을 팔기도 했다. 

 나는 이모 할머니가 빈랑 포장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빠르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손동작이었다. 이모 할머니는 매일 깔끔하게 머리를 하나로 묶고 짙은색 티셔츠에 몸에 붙는 긴 바지를 입고 출근을 준비했다. 외할머니나 다른 두 이모할머니랑 견주어봤을 때 첫째 이모 할머니는 하고 다니는 차림새나 성격이 훨씬 튀었다. 내 기억에 치마를 입은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 아래 입술 위에 두 줄기 분홍색 립을 시원하게 발랐는데, 느낌상 손님 접대를 해야 하니까 예의상 바른 듯했다. 

 매번 엄마가 일이 있어서 가게에 오면, 나는 엄마 꽁무니를 쭐래쭐래 따라다녔다. 이모 할머니의 감자점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었는데, 식품류, 장난감 외에도 벽 위쪽에 걸린 바비 언니들이 있었다. 정교하고 비교적 고가의 바비 인형을 파는 전문점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바비 인형을 손에서 놓질 못했다. 인형들의 머리는 아마 표준보다 약간 컸을 것이고, 두 다리는 제작 상 약간의 하자가 있었는데, 이런 비율과 겉모습이 더 친근감이 들지 않나? 

 매번 바비 인형 하나가 맘에 들면, 나는 엄마한테 애교를 떨며 사주면 안 되는지 물었다. 한두 번 그러고 나면 엄마는 그 다음부터는 안 된다고 했다. 어르신들 눈에 넣어도 안 아파할 손주의 이런 간청을 듣고, 이모 할머니는 두 마디도 하지 않고 나무 작대기를 들어 그 빠르고 우아한 손동작으로 그 바비 인형을 높은 곳에서 내려 나에게 안겼다. 나는 진심 우러나오는 박수로 이모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러면 엄마는 옆에서 못 이기는 척 했다. “안돼요, 매번 이러면. 아이참, 하. 에효. 나도 몰라. 다음부터는 안 되는 거예요. 뭐하니, 어서 이모 할머니한테 감사합니다 인사 안 드리고.” 완벽한 드라마였다. 엄마가 이모 할머니와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이야기나누는 동안, 나는 바비 언니를 손에 들고 영감을 찾아 감자점 여기저기를 누볐다. 

 영감? 무슨 영감? 당연히 바비 인형에게 어떤 옷을 입힐지에 관한 영감 말이다. 

 하루는 바비를 세일러문으로 꾸미기 위해서 국수코너에 오래 머물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제일 노오란 색 면발을 고르기 위해 제 딴에 엄청 고심했던 것이다. 그렇다, 국수는 그녀의 헤어 스타일을 위한 중요한 요소로, 이 소년의 머릿속에는 이미 줄줄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집에 가서 엄마 미용실 트레이 맨 아래 칸에 있는 상자 속 그 고무줄로 국수를 고정해야겠어. 안에 분명 노란색 원형 고무줄이 있겠지. 바비의 머리카락은 황금색이 아니고 노란색이니까.’ 그러고는, 감자점 제일 아래 쪽 문구 코너로 시선을 돌려, 적당한 컬러의 색지를 찾아내 집에 가 얇게 잘라야지. 양면에 풀을 바르고 투명 테이프로 완벽한 의상을 완성할 거야. 가슴팍의 리본은 입체감을 주기 위해서다. 폼 양면테이프를 작게 잘라 바비의 가슴에 붙인다. 아! 폼 테이프는 지난 번에 어버이날 카드에 다 쓴 거 같은데, 다행히 여기 이모 할머니 가게에도 있으니까, 이러다가 엄마한테 혼나려나? 안돼. 폼 테이프는 아빠도 필요하다고 말해야지. 그러면 되지. 

 거실 구석의 그 책상과 전시 벽이 나의 작은 왕국이라고 한다면, 이모 할머니네 감자점은 내 영감의 거대왕국이라 할 것이다. 타이베이에 올라온 지 어언 십여 년, 오래 이모 할머니를 못 뵀다. 그 몇 명의 바비 언니들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도 물론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매 시리즈를 여러번 봐도 늘 똑같이 눈물을 흘리며 생각한다. “흑흑, 미안해. 너네들을 데리고 와서 내가 너네들한테 잘해주긴 했니?” 하지만 이모 할머니의 감자점과 바비들은 내 어릴적 성장 과정 속에서 꿈처럼 극히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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